4,000년의 역사, 70살의 젊은 이스라엘의 기적적인 재 탄생

눈부신 이스라엘의 70년

현대의 이스라엘을 떠올려보자. 과거에는 성경의 고향이었으며, 현재는 최첨단 나노 기술의 중심의 나라이다. 하이테크 및 과학의 혁신적인 리더로써, 전 세계 투자자들이 몰리는  ‘스타트-업’국가 이다. 또한 중동 전역의 유일한 자유 민주주의 국가이다. 사방이 적들에 둘러싸여 있지만, 이를 무시하듯 최첨단 과학과 최첨단 기술로 끝없이 진화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놀랍게도, 이같은 눈부신 발전은 불과 70여년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다.

세계역사를 다시 쓴 이 나라, 이스라엘의 전설적인 독립이야기

Ben-Gurion

“이스라엘에서는  제 아무리 현실주의자라도,  기적을 믿을수 밖에 없다.” 벤구리온 이스라엘 초대 수상이 한 말이다. 그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2,000년의 유랑 생활이 끝나고, 이스라엘은 인류 역사상 가장 전설적인 복귀를  하였기 때문이다.    

예루살렘 멸망으로 세상으로 흩어진 이스라엘 민족들(AD 70)

Ercole de Roberti Destruction of Jerusalem Fighting Fleeing Marching Slaying Burning Chemical reactions b
예루살렐 포위와 함락

눅 21:20 ~ 24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 저희가 칼날에 죽임을 당하며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이 예언대로  AD 70년에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기가  왔다. 로마군은 이스라엘을 침공했고, 도시들은 약탈 당했다. 예루살렘은 무너지고 불에 타고 , 성전은 헐려 잔해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유대인들은 자유를 위해 반항하고 용감하게 싸웠지만, 그 반란은 금방 진압 되었다. 수 세기 동안 고향을 잃고, 무력하며, 희망을 잃어버릴 긴 방황의 시간이 시작된 것이다. 그들에게 약속의 땅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길고도 긴, 또 쓰디 쓴 유대인의 유랑은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흑역사가 되었다.

“디아스포라” 1,900년간의 기나긴 방황의 세월

모든 사회, 심지어 셰익스피어와 마틴 루터까지 권장한 반 유대주의

Jewishdiaspora
3차에 걸친 유대 민족 집단 이주
반유대주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널리 퍼졌고, 강렬한 비합리적 증오 정서이다.  새로운 국가가 등장하거나 종교가 진화하면서도 유대인들은 학살, 십자군, 종교재판 등 상상을 초월하는 모습으로 핍박을 당하였다.  심지어 유대인은 뿔과 꼬리가 있어 기독교 어린이들을 죽인다는 괴이한 소문도 돌았다. 카톨릭은 예수님의 죽음에 유대인이 책임이 있다고 가르치기도 했다. 유대인들은 격리된 게토 지역에 살고, 구분되는 표식이 있는 옷을 입어야 했다.  이런 정서 속에서 유대인은 대학살을 당하기도 했다.

1,346년, 유럽에 흑사병이 발병했다. 단 오년만에 유럽을 강타한 흑사병은 무려 유럽 인구의 절반을 죽였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유대인을 질병의 원인로 지목하였다. 병을 퍼뜨리기 위해 우물에 독을 탔다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이 질병의 원인으로 지목 당한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기독교인만큼 전염병의 피해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담으로, 우유대인들은 게토에 격리 수용되어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이 적었고, 또한 종교적인 관습에 의해서 집에 들어갈 때 손을 씻는 관습(출 30:20 // 성전에서 행하던 관습을 집에서도 동일하게 행하는 것으로 전래됨)과 시체를 매장 하기 전에 깨끗히 닦는 종교 의식이 있었다. 이로 인해 흑사병에 의한 피해가 적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1346-1353 spread of the Black Death in Europe map
1,346-1,353 흑사병 발병 당시 유럽 지도

이러한 반 유대주의로 인하여 수만명의 유대인들이 산채로 화형 당하기도 했다. 1,543년, 종교 개혁을 시작한 마틴 루터는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이라는 팜플렛을 배포했다. 팜플렛에서, 그는 유대인 학살을 권고했다. 그때까지 카톨릭은 유럽 유대인들에게 토지 소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또한 교회는 기독교인들에게 대부업을 허용하지 않고, 유대인들에게만 허용했다(지저분한 일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유대인들은 자연스럽게 대부업을 통해 부를 축적하게 되었다. 결국, 당시 사람들의 머리 속에 대부업자들은 유대인이라는 공식이 자리잡게 되었으며, 유대인들은 탐욕스럽다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식 되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에서 유대인인 샤일록이라는 인물은 1 파운드의 살(약 450g)을 저당잡은 – 실제로 생명을 저당잡은 – 악독한 유대인으로 묘사되었는데, 이것은 당시 유럽인들의 유대인들에 대한 이미지를 보여 주는 것이었고, 나치의 유대인 탄압을 위한 좋은 흑색 선전 도구로 사용되었다.

“집단 학살Pogrom“은 러시아 용어로 “파괴하다”

서유럽에 거주하는 유대인들은 상대적으로 안전하고 부유 한 삶을 살았으며, 동유럽의 가난한 형제들과 비교하여도 사회적으로도 인정 받는 편이였다. 특히, 러시아의 유대인들과 비교하면 더욱 그러하다. 러시아에 사는 95%의 유대인이 처절한 빈곤 속에 살고 있었는데, 얼마나 빈곤했는지 한 사람이 한 켤레의 신발을 갖는 것은 사치스러운 것이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유대인 가정에서 아이들은 러시아의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서 서로의 신발을 돌아가면서 신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917년 공산당이 집권하면서, 유대인들은 빠르게 “집단학살Pogrom”의 공격 목표가 되었다. 500개 이상의 유대인 공동체가 우크라이나에서 청소되었는데, 이 무렵 약 6만명의 유대인이 학살되었다. 이는 근대 세계 역사에 있어서 가장 야만적이며 수치러운 오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Hep-hep riots
프랑크 푸르트에서 발생한 Hep-Hep 폭동(1819). 오른쪽에 안경 쓰고 있는 단추 여섯개 연미복을 입은 사람은 약사나 선생인데, 유대인의 목을 누르면서 곤봉으로 유대인을 내리치려고 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전세계에 흩어진 동안에도 어떻게 ‘유대인’으로 남을 수 있었을까?

예루살렘 멸망 이후, 유대인 현자들은 유대인 역사상 가장 영광스런시기 중 하나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들이 개발한 사회, 법률 및 교육 시스템으로 인해 모든 유대인 공동체는 어디서나 살아남을 수 있었다. 이는 그들이 살았던 모든 사회에서 과학, 문화 및 경제에 기여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유대인들은 종종 그들의 신념 때문에 박해 받았다. 어려운 시기에도 그들의 문화와 전통을 고수 했기 때문이다. 또한 유대인 혈통은 모계로(어미가 유대인이면 자녀가 유대인) 전승된다. 망명 생활에서 수천 년 동안의 모계 혈통 유지 및 문화와 전통에 대한 고수 정신은 다른 디아스포라(다른 나라에 흩어진 유대인들)에 공통 유전자를 유지하게 하였다.

시오니즘, 예언을 믿기에 약속의 땅 이스라엘로 돌아가고자 하는 열망

19세기에 테오도르 헤르츨 같은 많은 유대인들은 핍박과 차별, 학살 등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 뿐이라고 믿었다. 바로 유대인들이 역사적으로 살았던 옛 이스라엘 땅에다 유대인의 나라를 건설하자는 것이었다. 이 운동을 “시오니즘“이라고 부른다. 시오니즘 운동은 그들의 아버지의 나라 이스라엘을 동경하여 돌아가자는 운동이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나라를 세울수 있을까? 이를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토대를 마련 할 필요가 있었다.

PikiWiki Israel 20841 The Palmach
팔마흐, 이스라엘로의 귀환
  • 1912- 국가 기반 수립
  • 1923- 아인슈타인의 이스라엘 독립의 희망 메시지
  • 1924- 국가 건설을 위해 테크니온 공대(The Technion-Israel Institute of Technology)설립. (후에 다수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

조금씩 조금씩 세계 곳곳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땅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조상의 땅에서 살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왔다. 약 1,900년 동안의 망명 세월에도 유대인들을 오랫동안 한 민족으로 모은 힘은 바로 성경의 예언이었다. 성경의 예언은 잃어버린 아버지의 땅으로 돌아가자는 꿈을 심어주었고, 이는 그들이  무덤 같은 삶 속에서 한줄기 희망이었다.

렘 50:4-6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오며 그와 함께 유다 자손이 돌아오되 그들이 울며 그 길을 행하며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할 것이며 그들이 그 얼굴을 시온으로 향하여 그 길을 물으며 말하기를 너희는 오라 잊어버리지 아니할 영영한 언약으로 여호와와 연합하자 하리라 바벨론에서 도망하라 갈대아 땅에서 나오라 …

야곱의 환란의 때 – 홀로코스트

구체적인 성경의 예언을 살펴보자. 아주 오래  전,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직전, 그는 큰 고통과 공포 속에서 밤새 하나님과 씨름했다. 이는 유대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에 겪을 슬프고 험난한 고난에 대한 예언이었다.

렘 30:3-7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이킬 때가 이르리내가 그들을 그 열조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 … 두려움이요 평안함이 아니로다 너희는 자식을 해산하는 남자가 있는가 물어보라 남자마다 해산하는 여인 같이 손으로 각기 허리를 짚고 그 얼굴 빛이 창백하여 보임은 어찜이뇨 슬프다 그 날이여 비할데 없이 크니 이는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마는 그가 이에서 구하여냄을 얻으리로다

성경은 ‘유다의 포로를 돌이키고, 열조의 땅으로 돌아오게 할 때’, 야곱의 환난의 때가 올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이 예언은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유대인들이 새 조국의 기초를 닦는 동안, 다른 세계에 또 다른  민족들은 독특한  방향으로 결집하고 있었다. 독일 아돌프 히틀러의 통치 기간 중, 반 유대주의는 온 유럽에 퍼져나갔다. 처음에는 박해 정도로 진행되던 혐오가, 유대인 인종 청소인 홀로코스트로 발전되었다. 이 사건으로 유럽에서 600만명의 유대인이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하며, 야만적이고 체계적으로 학살되었다. 대부분의 유대인 학살은 유대인 격리 수용 시설에서 발생하였다. 다행히 반 유대주의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수그러든다.

 단 30분, 2000년의 예언이 이루워 진 순간

홀로코스트 속에서 유린당하고 헐벗은 이스라엘. 그 누가 이스라엘이 독립할 것이라 생각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기적과도 같이, 예언은 일획의 어긋남이 없이 모두 성취되었다. (렘 50:4-6) 1947년 11월 29일, UN 총회에서는 3분의 2가 서부 팔레스타인을 유대와 아랍의 분할을 진행하는 것으로 의결하였다. 사실 상의 이스라엘 독립 인정이었다. 아랍은 지극히 당연하게 반대했다. 예루살렘의 무슬림 무푸티(이슬람 법학자) 아민 알 후세이니(민족 주의자)는 선언했다. “성전(거룩한 전쟁)을 선포한다, 나의 이슬람 형제들아, 유대인을 죽여라! 모두 죽여라!”

 Tel Aviv텔 아비브(현 이스라엘의 수도)에서 1948년 5월 14일

두 목수가 밤을 지새며 작은 무대를 짓고 있었다. 그들이 가진 예산은 단 200달러 뿐이었기 때문에, 조직 위원회는 주변 까페에서 수백개의 의자를 빌려 왔다. 주변 상점은 마이크와 카펫을 빌려 주었다. 테오도르 헤르즐의 초상화가 방 정면에 걸렸고, 파란 기와 하얀 기를 초상화 양편에 걸었다. 무대는 준비 되었다. 의식 1시간 전, 새 정부 인사들은 집에가서 서둘러 옷을 갈아 입고 왔다. 1948년 5월 14일 오후 4시, 시오니즘 리더들이 텔 아비브 박물관에 모였고, 오케스트라는 “Hatikvah이스라엘 국가(희망이라는 뜻)”를 연주하였다. 국가 연주가 마치자, 데이비드 벤구리온은 선언문을 크게 읽었다.

이스라엘은 유대인에게 최적의 땅이다. 여기에서 유대인은 국가의 지위를 얻었고, 국가의 문화적 가치와 의미를 창조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 유대인의 나라를 이름하여 “이스라엘”이라고 선포한다. 데이비드 벤구리온 ‘이스라엘 독립 선언’

바로 그 순간, 구약 성경의 예언은 성취 되었다. 단 30분 만에  2,000년에 걸친 유대인의 기도는 응답받았고, 생존과 성취의 기적이 막 시작되었다 . 박물관 밖에서 수백명의 사람들이 춤을 추고, 어떤 이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모든 유대인들은 환희 속에 거리를 메웠고, 신나게 춤을 추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의 독립 선언은 즉각적인 전쟁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예상대로 기쁨과 환희의 세레모니는 짧았다. 바로 다음날, 아랍의 5개국은 신생 이스라엘로 쳐들어 왔다. 이는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전쟁 같았다. 그 누가 다윗의 작은 돌멩이가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라 예상 할 수 있을까. 아직 국가라 하기에 작은 유대인 조직은 유럽식 무기로 무장한 아랍 5개국 연합군을 쳐부순다. 전쟁 끝에, 이 신생 국가는 2,000년만에 처음으로 그들의 고국에서 독립의 깃발을 사수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유대인 외교관 아바 에반은 ‘이스라엘은 탄생의 기쁨과 죽음의 공포를 동시에 느꼈다’고 회상했다.

70살의 이스라엘 – 고대 국가의 초 현대적인 미래

1948년 이 후, 이스라엘은 오랜 기간 칠흑같은 터널을 지나, 약 70년이라는 짧은 기간동안 마치 기다렸다는 듯,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 왔다.

미래지향적인 최첨단 기술

USB flash drive, originally marketed as the DiskOnKey, Israel
USB 메모리로 흔히 알려져 있는 이동형 저장장치. 이스라엘에서 최초로 발명되었다.

방울토마토, USB 메모리, 아이언 돔 미사일 방어 시스템, 스마트폰 어플리케이션 같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는 물건의 많은 부분이 이스라엘에서 발명되었다. 최첨단 제품에서부터 농산품까지, 군용품에서 의약품까지, 이스라엘의 발명품은 나라의 작은 규모를 무색하게 한다. 격동의 세월 속 탄생과 우여곡절을 겪는 청소년기 같은 어려운 성장 조건 속에서 방황할 법도 했건만, 이스라엘은 기술 개발과 연구를 통해서 이런 기적들을 성취해 냈던 것이다. 그 결과, 짧은 역사에도 12명의 유대인들이 평화상, 문학상, 경제상, 화학상 4개 분야에서 노벨상을 수상했다. 이스라엘은 가난하고 황량하고 비생산적인 땅에서 초강대국으로 변모했다. 동시에 전쟁, 종교 및 다양한 정치적 갈등 유발 등 논쟁의 여지가 매우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불굴의 이스라엘 방어군

Flickr - Israel Defense Forces - IAF Flight for Israel's 63rd Independence Day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군대를 간다(초 정통파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제외).  빈부격차와 남녀를 막론하고 모두 군대를 가면 바닥부터 시작한다. 이스라엘 군대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군대이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10배나 큰 나라들을 상대로 이겼왔다. 예를 들면, 6일 전쟁 동안, 이스라엘은 이집트, 시리아, 요르단의 연합군에 맞섰다. 그들의 인구 수는 1억 3천만 수준이었고, 24만명의 군대를 파병했다. 이스라엘 군의 두 배가 넘는 수 (이스라엘 군대 수는 10만명 수준)였다. 이스라엘 방어군은 그들의 군대를 6일 동안 싹쓸이 청소 했다.

마사다 정신

2천년 전, 사막 성채인 마사다는 첫번째 유대 전쟁(로마와의 전쟁)에서의 비극을 상징하는 곳이었다. 로마인들의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마사다 산 꼭대기 성채에서 자살했다. 소수의 여자와 어린이를 제외하고 말이다. 로마인들이 성채를 점령했을 때 이 광경과 함께 아주 극소수의 여자와 어린이가 동굴에 숨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마사다는 유대인의 자유 의지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 역사적인 곳에서, 이스라엘 방어군은 맹새를 되뇌인다. ‘마사다는 절대 다시 함락되지 않을 것이다.’

Flickr - Government Press Office (GPO) - Masada (1)
북쪽에서 바라본 마사다 성채(산 꼭대기)와 뱀 모양의 길

다시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그들이 이 땅에 돌아오기 전, 이곳은 풀 한포기 나지 않았고, 바위만 가득한 적막한 회색만이 가득했었다. 바벨론, 바사, 헬라, 로마, 오트만, 영국 등 2,000년간 많은 나라들이 이 땅에 정착하려고 애썼으나, 모두 실패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돌아 오고서, 이 땅은 다시 번영하기 시작했다. 얼굴에 화색이 돌고 눈이 초롱초롱한 사람들과 같이 꽃피기 시작했다. 과일들은 수천년간 내지 않던 생기있는 색을 내기 시작했다. 유대인들은 그들 인생의 전부를 물을 대거나 사막의 오아시스를 발굴하는 작업을 위해 바쳤다. 과연 황무지에 나라를 건설할 수 있을까 하는 모든 의구심을 떨치고, 그들은 황무지에 물길을 내고, 새 나라를 이 고대 땅에 세우는데 성공한 것이다.

살아있는 성경의 예언

유대인들은 오늘날 유일하게 살아있는 고대 민족이다. 아시리아, 바벨론, 여부스, 가나안인등 모든 고대인들은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생각해 보면 어떤 민족도 유대인들보다 큰 고통과 핍박을 겪지 않았다. 세상 여기 저기 구석구석 살펴본다 해도 이스라엘 유대 민족처럼 완전히 뿌리까지 뽑혔다가 자신의 나라로 다시 돌아온 민족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참으로 믿기 힘든 놀라운 일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모든 내용들이 이미 성경에 예언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이미 이 모든 사건들이 일어나기 전, 이런일이 있을것이며 반드시 성취된다 알려주고 있다. 성경은 유대인들이 두 차례 흩어지고, 두 차례 돌아올 것을 미리 예언하였다. 처음은 고대 바벨론에서, 두번째는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우리는 예언이 성취되는 시기에 그 예언을 바라보는 증인으로 살고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놀라운 기적, 이스라엘 독립 70년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 ‘왜 하나님은 이 유대 민족을  돌보시고, 결국 승리하게 하셨을까? 왜 우리에게 이런 이스라엘의 독립을 이야기 하고 계실까? 왜?’

Gutenberg Bible, Lenox Copy, New York Public Library, 2009. Pic 01
박물관에 있는 구텐베르크 활자본 성경에 이미 이 모든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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