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은 마음의 고향이요, 영적 DNA가 숨쉬는 공간이다.
다윗과 옛 예루살렘
기원전 천년 전으로 거슬러간다. 유대 민족의 왕 다윗이 여부스 족의 도시를 탈환한다. 젊은 유대의 왕은 여부스라 불리는 성벽으로 둘러 싸인 도시 정복을 위해 놀라운 방법을 찾아 낸다. 도시의 상수도 근원 물길을 찾아 잠수해 들어가서 도시를 정복한 것이다. 그 도시는 다윗의 도시라고 불린다. 왕 다윗은 오늘날까지도 유대 민족에게 그 영향을 끼치는 존재이다. 다윗은 그의 도시를 새로운 명소로 바꾸기 시작했다. 성벽을 증축하고 방어를 강화하였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그의 가장 중요한 일은 추후에 있을 예루살렘 성전 건축의 자리를 확보한 것이었다.

예루살렘 성전 건축의 예언은 다윗 다음 왕의 때이다
다윗은 그의 왕궁을 건축하고나서, 언약궤를 놓을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기를 원하고 원하였다. (그 당시 언약궤는 성막 – 천막 -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는 자신은 백향목으로 지은 화려한 궁에 살면서 하나님을 그렇게 천한 곳에서 섬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윗왕의 아들을 통해서 성전을 건축할 것을 이미 정해 놓으셨고, 그것을 통해서 전 세계 민족들이 예루살렘의 존재를 알게 하실 것을 계획하셨던 것이다. 기원전 970년, 다윗이 70세에 숨을 거두며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의 탄생을 세계에 알렸다.

솔로몬이 왕이 된 후, 그는 두로의 히람의 비싼 목재를 사들였다. 3만명의 일꾼들을 징집하여 업무를 시켰다. 큰 백향목과 향나무는 벌목하여 띄워 해변으로 보내 졌고, 해변가에서부터는 육로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이송되었다. 솔로몬은 7만의 수레와 8만명의 석공을 언덕에 배치했다. 3천3백명의 감독들에 의해 관리가 되었고, 최상급 큰 돌을 알맞게 재단하여 성전 공사 부지로 옮겼다. 성전 내부는 순금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다윗이 만든 금과 은 기구들은 성전에 헌납되었다. 이것이 솔로몬이 건축한 예루살렘 성전의 위엄있는 모습이다. 솔로몬 성전은 예루살렘의 상징으로서 400년간 장엄한 모습을 자랑했다.
첫번째 예루살렘의 멸망
기원전 927년 솔로몬 사후에 나라는 두 개로 분열된다. 이스라엘은 북쪽에, 유다는 남쪽에 자리한다. 약 200년이 흐른 기원전 722년, 이스라엘은 앗시리아에 멸망 당했고, 약 100년 후 기원전 606년에 바벨론 대장군 느부사라단이 군대를 이끌고 유대와 그의 수도를 수중에 넣었다.
예루살렘은 한달 후 느부갓네살 왕이 도착하자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기원전 586년 무더운 여름 날. 예루살렘은 불길에 휩싸이고, 이스라엘 백성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의 상징인 성전도 불타고 말았다. 느부갓네살왕은 유대 민족이 다시는 반기를 들지 못하도록 예루살렘을 파괴한 것이다. 예루살렘은 도시 성벽에서부터 시작하여 철저히 파괴되었다. 포로들은 결박된 채 바벨론으로 끌려갔다. 이제 그들의 머리는 숙여지고, 망명자들은 빈약한 소유물들 사이에서 악기를 들고 바벨론으로 행진했다. 그들이 무수한 격동의 날 동안 연주한 멜로디는 이제 침묵이 되었다.
시 137:1~4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기원전 516년경 : 스룹바벨 성전
70년이 흐르고, 바벨론은 강력한 페르시아의 왕 고레스의 침략을 받는다. 결론적으로, 고레스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풀어 주고,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도록 허락했다. 스룹바벨은 바벨론에서 포로들의 우두머리로 있다가 첫번째 예루살렘 포로 송환이 있을 때 돌아가 옛 성전 터에 성전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스룹바벨(의미; 바벨의 씨)은 이름에서 나타나듯 바벨론 포로 기간중 태어난 인물로써, 두 번째 성전 건축의 총 지휘자 였다. (스룹바벨이 재건한 성전은 나중에 헤롯왕에 의해 더 크고 화려하게 증축된다). 젊은 세대들은 성전 건축을 기뻐하였으나, 나이 든 세대들은 슬픔에 잠겼다. 새 성전은 예전의 영광과 비교할 수도 없이 초라했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도 안타깝게도 유대 백성들은 또 하나님을 배반하고 만다. 그 동안 고레스는 죽고, 새로운 왕이 즉위했다. 새로운 왕은 절대 예루살렘 주변에 성벽을 세우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선포한다.
예루살렘 성벽 건축의 영웅 – 느헤미아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유대 민족은 파괴된 도시에 산다는 불안함과 굴욕감을 갖게 되었다. 도시를 감싸는 성벽도 없이 있는 것은 적에게 쉬운 먹이감이 되는 일이었다. 더구나, 들짐승의 공격, 비바람에 대한 방어의 어려움, 적대적인 주변 민족들의 위협, 이방인이 쉽게 드나들 수 있는 문제들은 그들에게 큰 문제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느헤미아는 자신의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그의 마음은 철렁 내려 앉았다. (느헤미아는 그 당시 페르시아왕의 시종장 – 국무총리 – 였다) 그래서 그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왕에게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벽 건축을 하겠다고 간청한다. 하나님의 손이 느헤미아에게 위엄있게 내려, 왕은 그의 요청을 허락한다.
느 2:17 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우리가 당한 곤경은 너희도 보고 있는 바라 예루살렘 이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건축하여 다시 수치를 당하지 말자 하고
그러나, 예루살렘 성 재건 움직임은 즉시 북쪽, 동쪽, 남쪽에서 제지 당했다. 그리고 서편 총독같은 주변 관리들의 반대에 부딪쳤다. 예루살렘은 온통 적으로 둘러 싸여 있었다. 모든 유대인들은 완전 무장을 갖춘 채 성벽을 재건할 수 밖에 없었다. 무장한 채 일을 하는 동안 보초는 나팔을 들고 적들이 나타나는 위험 상황에 나팔을 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모든 유대인들은 밤 새도록 성벽 건축에 헌신했고, 적들이 몰려오면, 공사를 중단하고 방어에 임했다. 위험한 일이자 힘든 노역이 시작된지 수 개월째… 성벽은 완성되었다. 완성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춤과 노래와 축제로 기쁨을 나누었다.
충격적인 날의 기억: 70년도 두번째 성전 파괴
예루살렘 재건 후 수 세기 이후에, 예루살렘 성벽은 다시 유대인의 피로 물들기 시작했다. AD 30년 경, 예수님은 성전이 완전히 무너질 것을 예언하였다.
마 24: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그 예언에 따라서 일들이 일어난다.
68년: 베스파시안의 포위
68년: 네로 황제의 자살 사건으로 인해 로마 군대는 예루살렘에서 포위를 풀고 철수한다.
눅 21:20 ~ 23 너희가 예루살렘이 군대들에게 에워싸이는 것을 보거든 그 멸망이 가까운 줄을 알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며 성내에 있는 자들은 나갈찌며 …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로마군이 잠시 철수할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경고하신 도망갈 타이밍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는 것 뿐만 아니라, 유대를 벗어나서 절대 돌아오지 말라는 예언을 믿었다.
70년: 4월 예루살렘 포위
겔 4:6-7 그 수가 차거든 너는 우편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사십일로 정하였나니 일일이 일년이니라 너는 또 에워싼 예루살렘을 향하여 팔을 벗어메고 예언하라
이 예언을 따라서 AD 70년 – 예수님 승천 40년 후 – 에 티투스는 유다에 있는 남아있는 도시들을 착실히 정복해 갔고, 수 많은 유대인을 학살하거나 포로로 삼았다. 티투스는 유대인의 심장인 예루살렘으로 눈길을 주게 되었다. 그는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보급을 차단한 뒤 유대인의 출입을 그대로 끊어 버렸다.
도시를 수비하는 모든 이들에게 배고픔이 엄습해왔다. 도시를 빠져나가 도망가는 자들은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포위 기간 동안에 사람들이 서로를 잡아 먹기도 하고, 아이 엄마가 살기 위해서 애를 잡아 먹기도 했다고 전한다. 6개월간의 포위 공격 끝에 성벽이 붕괴되고 말았다. 로마군들은 금을 찾기 위해서 성전 곳곳의 돌들도 지렛대로 다 파 내서 녹이고 조각내기도 하였다. 그래서, 문자 그대로,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기지 않겠다는 예언이 이루어진 것이다.
거룩한 성전은 완전히 떼죽음의 터가 되었다. 큰 화염은 하늘까지 치솟았다. 요세푸스는 6개월 동안 약 130만명이 죽임을 당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루살렘 멸망과 함께 시작된 유대 민족의 유랑의 시작
향후 1,900년 동안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에 살 수 있는 아무런 권리를 가지지 못하였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이나 그 성전을 잊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그들은 성전을 다시 건축할 것을 기도 하였다. 유대인들은 363년 다시 한번 성전을 건축할 시도를 했었다. 당시 로마 황제 Julian the Apostate는 그들의 성전 건축을 허락했었지만, 그들에게 비극이 닥치고 말았다.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는 동안에 성전 기초 부분 근처에서 끔찍한 화재가 발생했고, 일꾼들이 일부 타 죽기도 했다. 이렇게 성전 건축은 중단되었고, 다시 시작되지 않았다.
수 세기를 거너면서 유대인, 바벨론, 페르시아, 아랍인들, 십자군들, 무슬림들과 영국인의 피가 성벽을 붉게 물들였던 것이다.
지금도 분쟁과 충돌의 지역으로 남아 있는 예루살렘
근대 이스라엘 국가는 1,948년 세워졌다. 예루살렘에서는 다른 종교나 정치적인 이념이 종종 폭력 사태로 번지곤 한다. 더구나, 옛 성전 터에 세번째 예루살렘 성전 건축하려는 시도는 그 지역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하고 있다. 이런 민족들간의 평화 안착시도는 요원한 상태이다. 이런 충돌들을 바라보면, 이 지역의 지속적인 평화는 상상하기 어려운 문제가 된다. 중동에 있는 예루살렘이 그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평화의 아이콘이 될 수 있을까?
사랑의 성, 새 예루살렘
냉소적으로 들릴지 모르겠다. 70년 예루살렘 멸망 사건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자신의 죄로 돌려 달라는 유대 민족의 자업자득인 셈이다. 성경 예언이 모두 다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정말 놀라운 것은, 성경의 예언에서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이 지상으로 내려 올것인데, 이 새 예루살렘은 더 이상 이스라엘과 유다의 중심이 아니라고 예언한다. 그 성은 전 세계의 중심이 될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지상에 있는 아랍과 이스라엘 싸움터인 옛 예루살렘을 사모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을 사모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새 예루살렘은 인류에게 생명을 줄 수 있는 특별한 존재이다. 가까운 곳에서 먼 곳까지, 과거와 현재에서 탈출하여, 미래를 상징하는 새 예루살렘으로 나오라고 한다. 새 예루살렘은 단순한 도시가 아니다.
계 21: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