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영어: Abraham, 히브리어: אַבְרָהָם)은 B.C. 2000년경 이라크 남동부의 유프라테스강 인근에 존재했던 수메르의 고대 도시 우르 출신으로, 노아의 장남인 셈의 10대손이다(창세기 11:10~26). 실제 유대인은 셈족으로 분류된다. 아브라함은 최초로 ‘히브리인’이라 불린 성경 인물이며 이스라엘의 시조(始祖, Progenitor)라 할 수 있다(창세기 14:13).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구속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원래 이름은 ‘고귀(존귀)한 아버지’라는 의미의 ‘아브람(Abram)’이었다.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의 ‘아브라함’으로 바꿔주었다(창세기 17:4~5). 이름대로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교에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간주한다.

아브라함은 사후 예루살렘 남서쪽 35km에 위치한 도시 헤브론의 막벨라 동굴(마크펠라 동굴, Cave of Machpelah)에 안장됐다. 오늘날 ‘패트리아크 동굴(Cave of the Patriarchs)’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 동굴 묘지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경 속 유적이다. B.C. 1세기, 헤롯은 이곳에 거대한 사당을 세웠다. 이슬람교도들이 정복한 후 현재까지 모스크로 사용되고 있다. 동굴은 아랍어로 ‘신의 친구였던 사람의 묘’라는 의미의 ‘하람 엘 칼릴(Haram el-Khalil)’이라 불린다.

헤브론의 마크펠라 무덤. 헤롯 대왕이 족장과 족장들의 지하 동굴을 보관하기 위해 지었다. 성경에 등장하는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레아의 비석이 이곳에 있다고 전해진다.

시대적 배경

노아 시대 전 지구적인 대홍수가 일어난 후, 인류는 바벨론 평지로 알려져 있는 시날에 하늘까지 닿을 듯한 높은 탑을 쌓는다. 지구라트(Ziggurat)의 모델이 된 ‘바벨탑’이다. 하나님을 향한 도전으로 풀이되는 바벨탑 사건은 언어가 갈라지고 인류가 분산되는 결과를 가져왔다(창세기 11:3~9).

아브라함이 살았던 시기는 수메르의 우르 제3왕조(Third Dynasty of Ur) 때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미 종족 중심의 도시국가가 형성되어 있던 중기 청동기시대(Middle Bronze Age)였다. 성경에 아브라함의 고향으로 소개된 ‘갈대아(훗날 바빌로니아) 우르(Ur of the Chaldeans)’는 수메르의 수도였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상지 중 하나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유적지는 오늘날 이라크 남동부 디카르주 나시리야의 유프라테스강 인근 사막에 있다. ‘역청의 언덕’이라는 뜻의 ‘텔 엘-무카이야르(Tall al-Muqayyar)’가 그것이다. 영국의 고고학자 레너드 울리(Leonard Woolley)에 의해 1922년부터 12년간 발굴됐다.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아브라함은 신앙적으로 아버지 데라와는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성경은 데라가 다른 신들을 섬겼다고 밝히고 있다(여호수아 24:2). 아브라함은 선대로부터 믿어온 신들을 버리고 하나님을 섬겼던 것이다(창세기 12:4, 7~8). 그의 이 같은 신앙적 태도는 당시 메소포타미아 사회에서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고대 근동의 종교 문화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아브라함 시대, 가나안을 포함한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 문명 세계는 다양한 신들을 숭배했다. 아브라함의 고향 우르와 한때 정착해 살았던 하란(Haran)은 달의 신 난나(Nanna) 숭배의 중심지였고, 이라크 남부에 위치했던 수메르 도시 우루크(Uruk)는 풍요, 사랑, 전쟁의 여신 이난나(Inanna, 난나의 딸), 하늘과 천체를 관장하는 안(An)을 가장 중요시했다. 가나안에서 가장 각광받은 신은 바알(Baal)이었다. 바알은 농사와 밀접한 대지의 신이자 비와 하늘을 관장하는 신으로 추앙받았다. 이 신들은 다른 민족들에게 이름만 바뀌어 숭배되었다. 이난나의 경우, 가나안에서는 ‘아스다롯(Ashtaroth)’, 바빌로니아(바벨론)에서는 ‘이슈타르(Ishutar)’라 불렸다. 이슈타르는 오늘날 ‘이스터(Easter)’라고도 칭하며 이스터(Easter) 축제의 여신으로 알려져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이난나(이슈타르) 여신이 새겨진 인장.

농경문화가 주를 이루었던 고대 사람들은 신들을 끊임없이 달래줘야 한다고 믿었다. 그렇지 않으면 농비사를 망치거나 해를 당할 수도 있다고 여겼다. 이 같은 환경적 요인으로 이스라엘인들은 하나님에게 경배한 후 다른 신들의 제단을 찾아가곤 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주관하신다는 것을 믿었다(창세기 14:22). 그가 ‘믿음의 조상’이라 불리는 이유 중 하나이다.

1929년 프랑스의 고고학자 클로드 세페르(Claude Schaeffer)는 시리아의 라스 샴라(Ra’s Shamrah) 인근에서 메소포타미아의 영향을 받은 고대 도시 우가리트(Ugarit)의 궁터를 발굴했다. 그 과정에서 설형문자로 기록된 점토판 ‘우가리트 문서’를 발견했다. 이 문서에 따르면 아브라함이 믿었던 ‘엘’ 또는 ‘엘로힘’이라 불리는 하나님은 신들의 우두머리이자 창조의 아버지다. 바알은 엘보다 한 단계 아래다.

아브라함의 생애 및 주요 사건

우르에서 하란으로

아브라함은 창세기 11장에 처음 등장한다. 11장에서는 바벨탑 사건과 인류사의 한 줄기라 할 수 있는 노아의 세 아들 중 셈을 시조로 한 셈족의 계보를 소개하다 10대손인 아브라함 대에 멈춘다. 부친 데라는 가솔들을 이끌고 갈대아 우르를 떠난다. 이 시점에 대해 학자들은 B.C. 2000년경 아모리족의 침공이 있던 때로 추정한다. 목적지는 가나안이었지만 우르에서 서쪽으로 약 970km 떨어진, 오늘날 시리아와 터키 국경지대의 하란에 정착한다(창세기 11:26~31).

데라는 하란에서 죽었다(창세기 11:32). 메소포타미아의 아버지는 집안의 우두머리로 모든 결정권을 쥐고 있었다. 천막을 치고 살 정착지를 선택하는 것은 물론, 가족과 종을 건사하고 부리는 모든 일이 가장의 권한에 있었다. 이제 그 모든 책임이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다.

가나안으로의 이주

창세기 12장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아브라함과 그의 가족사를 집중해서 다루고 있다. 하나님은 그에게 축복을 약속하며 가나안으로의 이주를 지시한다(창세기 12:1~2). 사도행전에 기록된 스데반의 설교에 따르면, 하나님의 지시는 아브라함의 가족이 하란으로 이주하기 전, 즉 갈대아 우르에 살았을 때 이루어진 일이었다(사도행전 7:2~4).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가족들과 종들을 데리고 가나안으로 이주한다. 사도 바울은 믿음의 조상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아브라함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이때 아브라함이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나아갔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서 타국에 사는 나그네처럼 거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세우실 성을 바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히브리서 11:8~10).

<가나안으로 떠나는 아브라함>, 이탈리아의 화가 야코포 바사노(Jacopo Bassano) 作.

아브라함은 가나안의 세겜을 지나 벧엘과 아이 사이에 체류했다(창세기 12:5~8). 이후 가나안에 기근이 오자 이집트로 갔다(창세기 12:10). 생계수단인 가축을 잃지 않으려면 물과 목초가 풍부한 국경 너머의 나일강 삼각주로 피난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가나안으로 돌아왔을 때 아브라함은 거부가 되어 있었다. 이집트의 파라오가 재물과 가축, 노예를 주었기 때문이다(창세기 12:16~13:2). 이중에는 후에 이스마엘을 낳은 사라의 여종 하갈이 포함되어 있었다(창세기 16:1). 가축들이 많아지자 목초지가 부족해졌고,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분가시키기로 하고 먼저 선택권을 준다. 롯은 비옥해 보이는 요단 평원의 소돔에서 살기를 원했다. 아브라함은 헤브론,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숲으로 갔다(창세기 13:5~18).

어느 날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전쟁포로로 끌려갔다는 소식을 듣는다. 롯이 살던 소돔에 네 나라(시날, 엘라살, 엘람, 고임)의 연합군이 침공했고, 소돔을 비롯한 나라(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소알)들이 동맹하여 교전을 벌였지만 결국에는 패하여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잡혀갔던 것이다(창세기 14:1~12).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해 318명의 가신(家臣)들을 거느리고 출전하여 포로들과 빼앗겼던 재물을 되찾아온다. 돌아오는 길에 아브라함은 살렘(예루살렘의 옛 지명으로 추정)의 왕이자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을 만난다.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빌어주었고,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전리품의 10분의 1을 바쳤다(창세기 14:13~20). 십일조의 기원이 된 사건이다.

<아브라함과 멜기세덱>, 스페인의 화가 후안 안토니오 데 프리아스이 에스칼란테(Juan Antonio de Frias y Escalante) 作.

아브라함의 후손

아브라함에게 한 가지 어려움이 있다면 후사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다메섹(다마스커스)에서 데려와 기른 종 엘리에셀을 후사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수차례에 걸쳐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그의 후손과 가업 상속에 대해 관여하신다. 엘리에셀을 후사로 인정하지 않고 아브라함의 친자를 후사로 인정하겠다는 것이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자기의 여종 하갈을 첩으로 주어 후사를 얻기를 바랐다. 그녀의 바람대로 이스마엘이 태어났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친자인 이스마엘도 후사로 인정하지 않으셨고, 오직 사라의 몸에서 태어날 아들만을 후사로 인정하셨다.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따라 아브라함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사라가 아들 이삭을 낳은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삭을 후사로 삼았다.

사라가 죽은 후 아브라함은 당시 문화적 관습에 따라 그두라를 후처로 삼아 시므란, 욕산, 므단, 미디안, 이스박, 수아를 얻었다. 아브라함은 죽기 전에 그의 모든 재산을 적자였던 이삭에게 상속했고, 서자들에게도 얼마의 재물을 주어 동쪽 지역으로 이주시켜 이삭과 떨어져 살게 했다(창세기 25:1~6).

아브라함의 믿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일화가 있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했던 사건이 그것이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아들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큰 잔치를 베풀었다. 그런데 그날 사라가이스마엘이 이삭을 놀리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내라고 요구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도 자기 아들이었기에 몹시 괴로워했으나 사라의 말대로 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둘을 집에서 내보냈다.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내는 아브라함>, 프랑스의 화가 귀스타브 도레(Gustave Doré) 作.

그 후, 아브라함에게는 더 큰 시험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님으로부터 외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그는 군말 없이 이삭을 데리고 하나님이 지시한 모리아산(성전산)으로 간다. 사도 바울은 그가, 하나님이 이삭을 다시 살려주실 것이라 믿었다고 증언하고 있다(히브리서 11:17~19). 그러나 하나님은 미리 준비해놓은 제물로 번제를 드리게 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아브라함의 믿음에 방점을 찍은 사건이었다.

<참고자료>
1. 그리스도 안상홍님 공식 웹사이트
2. 『성서 그리고 역사』, 장 피에르 이즈부츠, 황소자리
3. 『성서 속의 불가사의: 풀리지 않는 의문들』, 리더스 다이제스트, 동아출판사
4. 바알, 미술대사전, 한국사전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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